"뉴스입니다. 사이비 종교, 일명, '율리아' 사건의 생존자가 A10 구역으로 모두 대피하였습니다."
"정부는 본 사건에 대하여 강경한 수사를 진행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우리는 생존하였다. 아니, 생존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좀비는 있었던 것인가? 우리는 생각보다 좀비를 만나지 못하였다. 지겨울 정도로 많은 시체를 만났다. 공포가 있었나? 두려움이 있었을까? 아니, 남은 것은 빈 공허였다. 우리는 허망한 끝을 보았다. 누군가 죽지도, 망가지지도 않았다. 우리를 직접 협박하는 자도 있지 않았다. 일말의 좀비가 쉽게 우리를 해치지 못하였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과는 달랐다. 시선을 돌리자. 시선을 돌려 창 밖을 바라보자. 아직, 우리는 차 위에 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어둠이었고, 어둠 속을 긴 불빛으로 비추었다. 다른 길로 향하는 모양새였다. 안전하게 다른 창고로 옮겨지는 짐과 같았다. 누군가의 오류로 분류가 늦어진 짐을 실어서 목적지로 향하는 것만 같았다. 짐에는 하자가 있지 않다. 목적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들었던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살았던 마을이 멀어지고 있다. 이미 멀어졌다. 어둠 끝에는 빛이 있을 것이며, 우리는 다시 빛 안에서 살 것이다.
아직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 일을 겪은 우리는 무난하게 살아있다.
우리와 함께 이동한 생존자는 없었다. 우리 뿐이었다. 우리 뿐만이 아니었지만 그들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어려웠다. 목적직에 도달한 우리는 규정상 필요한 신체 검사를 해야했고, 신체에는 이상이 없다는 확인을 받았다. 임시 거처와 그동안 살 수 있는 티켓을 받았다. 깨끗한 옷과 적당히 포근한 이불, 통조림이 아닌 먹을거리. 우리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연하게 갖고 있던 것들이고, 며칠 전에는 갑자기 사라졌던 것이었다. 우리를 보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서, 그동안 살았던 곳과 조금은 다른 공기에 자각할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살던 곳에 있지 않다. 우리가 살던 곳은 구역 중 가장 많은 인구를 갖고 있던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벌어난 사건은 충격이었을까. 기폭제가 될 수 있었을까. 아니, 어떤 파장이라도 일으킬 수 있을까? 우리는 그것을 바라는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는 고요하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습니다.*' 라디오에서 다시 이 말이 나오고 있다. 평화. 일괄적인 평화이다. 촘촘하게 제 자리를 잡고 있는 평화이다. 쏟아져버린 혼란에서 어찌어찌 나온 우리가 다시 자리 잡은 평화이다. 아니, 우리가 잡은 평화일까. 일정한 의문은 접어두자. 다시 어두운 밤이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 스며 들었다. 다시 일상이다. 라디오가 말하는 평화를 듣는다. 라디오가 말하는 것은 저 멀리 밖에서 일어난 것이다. 손 뻗으면 물을 마실 수 있다. 막연한 기억을 갖고 있다. 어두운 밤에도 밖에는 약한 소음이 들린다. 술에 취한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 즐겁게 소리를 지르다가 다른 사람의 손길에 잡힌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모임 옆으로는 다정한 연인의 걸음소리도 들린다. 밤 늦게 가족과 들어가는 것도, 홀로 걸어가는 소리도, 약한 빗방울 소리도. 아, 비가 온다. 눈이 아니라 비가 온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창문이 흔들린다. 창문을 고쳐잠근다. 갑작스럽게 떨어지는 비에 사람들은 급하게 달려간다. 천막 아래, 지붕 아래에 모이고 건물로 들어간다. 그것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두는가. 두지 않는가. 그 사이에 좀비는 없다. 학교에서 배웠고, 언젠가 봤던 끔찍한 괴물은 없다. 우리는 좀비에게 먹히지 않을 것이다. 좀비가 다시 우리에게 손을 뻗는 일이 없을 수 있다. 다시 벽 안이다.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지 않고, 언제나 몸을 깨끗하게 할 수 있고,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은 곳이다. 이 곳에서 언제나 안전하고 평온한 밤일 것이다.
*. <재앙>, 송승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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